모든 고무신은 ‘십문칠’로 통했다. 모든 고무신은 ‘십문칠’로 통했다. 해방 이후 고무신의 수요가 점차 늘어나자 1947년에 태화고무(주)에서 말표 고무신을 생산·보급하기 시작하였는데, 말표 고무신은 이후 오랫동안 서민의 사랑을 받았다. 이어서 1949년에 왕자표 고무신(국제고무), 그리고 ♂1953년에는 기차표 고무신(동양고무공업) 등이 제 가끔의 상표를 달고 속속 공급 대열에 가담하였다. 그런데 남자 고무신은 그 모양이 같은 틀에서 찍어낸 듯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상표가 다르다는 정도였다. 가령 말표 고무신은 신발 안쪽 바닥에다 달리는 말의 형상을 상표로 그려놓았고 다른 고무신 역시 나름의 상표를 빨갛거나 파란 색깔로 찍어놓았으나, 며칠 신지 않아서 그 상표 그림은 지워져 버렸다. 그래서 국민학교 신장 앞에서 아이들이 바뀐 신발짝을 들고서 내 고무신은 말표야 내 신은 왕자표거든 그런 식으로 주인을 가리기도 쉽지않았다. 고무신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옥신각신은 아이들 사이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동네 어느 집 회갑 잔치라도 있는 날이면, 토방에 어지럽게 벗어놓은 고무신 중에서 자기 것을 찾아 신는다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술기운이 거나한 김에 대충 꿰어신고 집으로 갔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양쪽 고무신이 제 짝이 아니다. 그래서 어슬렁어슬렁 신발짝을 찾아 이웃집 사립으로 들어선다. 거 참 알 수 없는 일이네. 도대체 고무신 한쪽이 누구하고 바뀐 것이여. 아니, 뭔 일로 기척도 없이 들어와서 남의 집 토방 밑을 기웃기웃하고 있어? 어제 황 영감네 칠순 잔치에 갔다가 신발 한 짝이 바뀌었는디 말이여. 가만있어, 요놈이 내 고무신 맞구먼. 뭔 소리여? 놈의 신짝을 들고 자기 고무신이라니. 이것 보드라고. 요놈은 색깔이 허연디, 요놈은 때꼽이 끼어서 시커멓잖은가. 자네가 신고 온 고무신 중에서 왼쪽 신발 한 짝이 내 것이라니께. 그럼 내 신은 짝이 안 맞는디. 그것이사 내 알 바 아니고…. 아이고, 고무신 짝 맞출라고 식전 아침부터 온 동네를 돌아댕겼네 그랴. 자네도 다리품 좀 팔아보소. 잔칫집뿐만이 아니라 동각(洞閣)에서 마을 회의라도 열리고 난 뒤끝이면, 바뀐 신발짝 때문에 애를 먹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까짓것 바뀐 대로 그냥저냥 신자 해도,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고무신도 염연히 ‘좌우가 유별’한데 술 취한 아무개가 왼쪽만, 혹은 오른쪽만 두 짝을 신고 가벼려서 맨 나중에 문 열고 나온 사람을 울상짓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요즘처럼 몇 밀리미터(㎜) 하는 식으로 정확하게 치수를 맞추지는 않더라도 사람마다 발의 크기가 제각각일 터인데, 어떻게 남의 신발을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그냥 신고 갔을까? 충청도 서산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이종민 할아버지의 얘기를 들어보자. 고무신이라는 게 신축성이 있어서 조금 작거나 조금 커도 신어보면 대강은 맞아요. 그 시절 남자 어른 고무신의 표준 사이즈가 얼만지 아세요? 십문칠이에요. 십문칠 사이즈의 고무신이면 어지간한 남자들 발에는 대충 다 맞게 돼 있어요. 십문칠이면 만사형통이었다니까요.” 당시 고무신의 크기를 재던 단위가 문(文)이었다. 1문은 약 2.4 센티미터다. 따라서 10문 7이면 256.8 센티미터쯤 된다. 성인 남자의 평균 발 크기가 그러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본시 고무신 치수를 나타내던 십문칠이라는 그 말은 일반의 언어생활에서 폭넓게 응용되었다. 야, 이 밀짚모자가 내 머리에 딱 맞네그려. 크지도 작지도 않고 십문칠이라니께. 맷돌 손잡이가 부러졌다고 해서 대충 깎었는디 맞춰보니 딱 십문칠이구먼, 허허. 이처럼 ‘십문칠’은 (‘안성맞춤’처럼) 어떤 물건이 맞춘 듯이 잘 맞는 경우에도 비유어로 쓰였지만, 어떤 물건이 (신축성 있는 고무신처럼) 여기도 맞고 저기도 맞는 경우에도 쓰였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배고프고 가난했던 그때 시절이 가끔씩은 눈물겹게 그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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